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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43.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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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철수

3군의 헌터들은 몇 주째 진전 없이 코랄지구 앞 다리를 지키며 시간을 보냈다. 정찰부대가 주기적으로 수색을 시도했지만 언제 또 감염체들이 쏟아져 나올지 몰라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은 총구를 뜨겁게 달구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되었고, 헌터들은 모래주머니로 쌓아 올린 초소를 두고 그늘진 곳을 찾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때웠다.

“몽키 쇼크의 여자들은 굉장히 적극적이야. 길을 가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일부러 가방이나 지갑을 흘리고 다니는 거야. 그리곤 ‘혹시 물건을 흘리지 않았냐’고 다가오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하지. 그게 바로 몽키 쇼크의 헌팅 룰인 거야.”

귀에 담배 한 개비를 꽂은 헌터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몽키 쇼크에 간 적이 있었지. 어떤 여자가 쇼핑백을 두고 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입질이 왔다’ 싶어 쇼핑백을 주웠지. 쇼핑백에 ‘Penny’라고 적혀있더군. 그래서 내가 그 여자 허리에 살짝 손을 얹고는 말했지. ‘내가 당신의 Penny를 가지고 있어.’ 근데 그 여자가 깜짝 놀라더니 내 따귀를 때리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었지. 여자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내 가방이 쓰레기통인 줄 알았다는 거야. 하하하.”

듣고 있던 헌터들이 멍청하게 따라 웃었다. 멀리서 다음 교대조가 손을 흔들었다.

“이봐, 수다는 집에 가서 와이프한테나 하라고.”

“집에 보내줘야 와이프한테 수다를 떨건 궁둥이를 두드리건 할 거 아냐?”

“아, 그거라면 걱정 마. 이제 곧 그렇게 될 거야.”

“뭔 소리야? 와이프라도 데리고 온 거야?”

교대조 헌터가 말했다.

“남부에서 지원 온 헌터들은 내일 철수라는군. 광장에 셔틀도 왔어.”

“뭐? 철수? 갑자기 왜?”

“글쎄. 가서 짐이나 싸.”

“철수라니…”

아직 코랄지구는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기갑부대를 제외한 남부 소속 헌터들은 철수 명령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찜찜했지만 대부분은 일단 집에 돌아갈 생각에 좋아했다. 처음 3군에 배치받은 후로 약 1년째 되던 날이었다.


“너 얼마나 모았냐?”

“어디 보자.. 15만 정도 되네.”

“우와. 너 왜 이렇게 많이 모았냐? 이 자식 완전 개부자네.”

“누구처럼 대충 살진 않으니까.”

오브라이언이 목을 돌려가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들은 작전 완료 시마다 본부로부터 포상 형태로 포인트를 지급받았다. 지급 조건은 전투마다 상이한데, 단순히 적의 사살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 설계에서부터 어시스트까지 다각도로 평가해 포인트를 지급했다.

“겨우 살아 돌아가네.”

“이래서 인생은 줄타기라는 거죠. 만약 저희가 저 다리를 건넜다면 지금쯤 광인이 되었겠죠.”

“줄타기라… 이 좋은 운으로 카지노에 한 번 들렀다 갈까?”

“생명운과 재물운은 엄연히 다른 겁니다. 당장 손금만 봐도 생명선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서 손목으로 이어져 있고 재물선은…”

“예예. 그놈의 지긋지긋한 설명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정말 감사하네요.”

머리띠를 한 남자가 질린다는 듯 표정을 짓자, 헌터는 무안한 듯 검은 선글라스를 치켜올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에 『cardo』 라고 쓰인 책을 들고 돌무덤 앞에 섰다. 그 돌무덤은 광인과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 소각한 뒤 묻은 곳이었다. 피난처 곳곳에는 마치 조형물처럼 돌무덤이 쌓여 있었다. 남자는 책 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무엇인가 중얼거린 뒤 무덤 위에 하얀 꽃을 얹었다.

“휴스턴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기갑부대장 닉이 짐을 싸고 있는 에이프릴을 보며 말했다. 에이프릴은 닉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함께 못해서 아쉽네요.”

닉이 말했다.

“같이 좀비 밥이라도 되길 바란 건가요?”

에이프릴이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뭔가 제대로 보답도 못하고 보내는 느낌이네요.”

닉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보상은 높으신 분들께서 해주실 테니.”

에이프릴은 별로 의미 없다는 듯 답했다. 닉도 더 이상 그녀에게 할 말이 없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프릴이 막사 밖을 나오자, 붉은 노을이 진 하늘에 커다란 전투기 10대가 하얀 연기로 선을 그으며 코랄지구를 향해 날아갔다.

“공군부대에서 온다더니 정말 빨리 왔군요.”

옆에 있던 닉이 말했다. 에이프릴은 멀어져 가는 전투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제 곧 전투기는 커다란 폭발물을 하늘에 떨어뜨려 코랄지구를 폭파시킬 것이다. 그리고 안에 있던 많은 광인들은 잿더미로 변해버릴 것이다. 물론 살아있는 사람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


다음 날 헌터들은 셔틀에 짐을 나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민가에서 잡동사니를 훔쳐왔는지 박스째로 카트에다 실어 날랐다. 한쪽에서는 본부에서 지급했던 무기들을 반납하고 있었다. 몰래 보급받은 무기를 가져가려 했지만 셔틀에서 지키고 있던 자치부대원들이 귀신같이 찾아내 반납당했다.

“1소대 여러분,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 돌아갈 수 있어 정말 기쁘군요. 역시나 이번 작전에도 저의 탁월한 리더십과 통솔력, 그리고 여러분들의 열정과 팔로워십이 조화를 이뤄 성공리에 마무리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파머를 항상 기억하시고 플라시보에 칭찬별 남기시는 것 꼭 잊지 마세요!”

파머는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소대원들을 한 사람씩 만나며 악수를 청했다.

“아?”

에이프릴이 뭔가 놓고 온 듯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뭐야? 꿀단지라도 놓고 왔냐?”

더플백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오브라이언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나 다시 좀 갔다 올게.”

“빨리 갔다 와. 괜히 남아서 미아 되지 말고.”

에이프릴이 오브라이언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막사로 걸어갔다.

에이프릴이 숙소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것은 소녀가 준 머리핀이었다. 머리핀은 검게 빛나는 단출한 모양이었는데 소녀가 왜 머리핀을 주었을지 궁금했다. 에이프릴은 머리핀을 왼쪽 가슴 주머니에다 넣고 막사를 나왔다.

그녀가 셔틀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민간인들이 있는 피난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무심결에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피난처에는 자치군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총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민간인들이 속박되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이봐! 지금 뭐 하는 거야?”

에이프릴은 자치군에게 다가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헌터의 등장에 당황한 자치군은 뭔가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것 마냥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프릴은 속박된 민간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동자는 마치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눈망울 마냥 측은해 보였다.

“뭐 하는 거냐고!”

에이프릴이 다시 되물었다. 그러자 뒤에서 자치군 간부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누구시죠?”

“헌터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사람들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닌데요?”

간부는 권위적인 눈빛으로 에이프릴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상관을 좀 해야겠는데.”

그녀는 자치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간부는 한참을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더니, 그녀가 쉽사리 의지를 꺾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자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피난처로 이송 중입니다. 이곳은 위험하니까요.”

“저렇게 묶어서?”

그녀는 사람들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철장 속에 갇힌 토끼 마냥 덜덜 떨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공무 집행 방해입니다.”

“좋을 대로 생각해. 나도 물러날 생각은 없으니.”

“이봐, 아가씨. 당신 혼자서 뭘 어쩌시게? 심심해? 내가 좀 놀아줘?”

간부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에이프릴 앞으로 머리를 갖다 댔다.

그러자 에이프릴은 피식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도는 척하다, 그대로 오른쪽 주먹을 간부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퍼억!

간부는 에이프릴의 주먹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군인들은 깜짝 놀라 느슨해진 총을 바로잡아 에이프릴에게 겨눴다. 땅바닥에 쓰러졌던 간부는 쪽팔린 듯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코피가 흐르는지 손가락으로 닦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미친! 죽고 싶나 보군.”

간부는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내 에이프릴의 머리에 겨눴다. 에이프릴도 반사적으로 양손에 리볼버 총을 꺼내 간부의 머리에 겨눴다.

“넌 오늘 죽은 목숨이다. 헌터. 실컷 즐기다 묻어주마.”

“코나 막고 말해. 웃기잖아.”

“끝까지 당돌하군. 너 혼자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수많은 군인들이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눴다. 아무리 속사수인 그녀였지만, 다수의 군인을 상대로는 버거워 보였다.

“그건 우리가 할 소리인데?”

뒤에서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에는 검붉은 방호복의 황갈색 머리 여자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였다. 그녀의 뒤로는 황금색 사자 무늬의 검은 방호복을 입은 키 큰 장정들이 네댓 명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 깔려 있던 자치부대 뒤로 메이가 데려온 남자들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군인들은 무기를 뺏긴 채 속박당해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검은 방호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한편에선 민간인들의 수갑을 풀어주고 있었다.

“에이프릴. 너 혼자 자꾸 위험한 행동 할 거야? 아버지가 알면 슬퍼하시겠다.”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오시라고 하지.”

에이프릴은 얄밉게 메이를 쳐다보고는 아까 그 간부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기밀이다.”

“또 얻어터지고 싶은 건가?”

그녀는 남자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코.. 코랄지구! A16구역 쓰레기 매립장!!”

“뭘 하려는 거지?”

“나도 몰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야.”

그녀가 코를 놓자, 남자는 많이 아픈 듯 신음 소리를 냈다.

에이프릴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치부대가 타고 온 오토바이에 훌쩍 올라탔다.

“에이프릴! 어쩌려고?”

“할 거 없으면 나나 좀 돕지 그래?”

“너 이 녀석!”

에이프릴은 시동을 켜고는 굉음을 내며 곧바로 코랄지구로 달려갔다.


**************


쓰레기 매립장으로 끌려가는 포터 안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차가웠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군인들이 무서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포터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내려!”

군인들이 총구를 자신들에게 향하자 사람들은 고분고분히 따랐다. 사람들의 긴 행렬 끝에는 쓰레기가 언덕처럼 쌓여있는 매립장이 있었다. 두 번의 쓰레기 언덕을 지나자 커다란 공터가 나왔는데, 그곳엔 컨테이너 박스 크기의 쇠창살 감옥이 5층 높이로 공터를 둘러싸고 있었다. 감옥 안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끌려오는 사람들을 힘없이 쳐다봤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

군인들은 새로 온 자들을 맨 위층 빈 감옥으로 이동시켰다. 사람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철컹’ 하고 쇠창살 문이 차갑게 닫혔다. 곧 군인들이 문을 잠가버렸다.

“우릴 어쩔 작정이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무시한 채 공터로 내려갔다.

잠시 후 하늘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요란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자치군 간부에게 상황을 전달받고는 서둘러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제 목소리가 잘 들리십니까? 하하.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비서실장 드미트리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맞는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되니 무척이나 기쁘군요. 이제야 제가 좀 속 시원하게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미소가 드미트리의 광대를 실룩거리게 했다.

“우릴 어쩌려는 거요! 당장 풀어주시오!”

“시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겠소! 이건 엄연한 불법행위요!”

“우릴 풀어주세요! 우린 바이러스가 아니란 말이에요!”

사방에서 사람들이 드미트리에게 항의하며 소리를 쳤다.

“후후후… 아직도 자신들의 입장을 알지 못하다니… 정말 너흰… 가축과 다를 바 없구나!!!”

그는 비굴했던 기색이 사라지고, 포악한 권력자의 낯빛으로 변했다.

“한때 너희 거지 같은 놈들의 시위와 폭동에 골든타워가 큰 위기를 겪었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이제 곧 공군의 무차별적인 포격에 의해 너희들의 터전은 잿더미가 될 것이고, 무르만스크는 황금처럼 찬란한 골든타워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인가!! 하하하!!”

드미트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거침없이 소리 내어 웃었다. 사람들은 그 섬뜩한 웃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드미트리에게 입 다물라고 소리쳤다.

“또 한 가지 즐거운 일은! 너희들도 곧 저 더러운 광인 놈들처럼 변해 죽게 될 것이라는 거지!!”

드미트리가 손짓하자 군인들은 커다란 탱크 옆 기계 조작부의 레버를 올렸다. 그러자 탱크에 전원이 들어오며 내부가 끓기 시작하더니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탱크와 연결된 중앙 호스는 여러 개로 분리되어 각 감옥으로 뻗어 있었는데 그 끝엔 스프링클러가 있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그럼 마지막 저승 가는 길, 잘 가길 바라고. 다음 생에라도 우리! 다신 보지 말자고!!! 하하하!!! 아! 내가 우리 존경하는 시민 너희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말이지… 저승에 가더라도 제발 높으신 분들에게 까불지 말라고. 으하하하하하하!!!”

드미트리는 마이크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한참을 웃더니 자신이 타고 온 헬기로 향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드미트리를 욕했다.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여 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자신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소리쳤다. 굳게 잠긴 문을 열어보려고 군인들에게 애걸하듯 마구 흔들어대며 소리 질렀다. 군인들은 무감각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껴안고 울며 기도를 했다. 감옥 안의 사람들은 이미 광인이나 다름없었다.

“밸브 열어!”

드미트리가 무전으로 말하자, 군인이 배관 밸브에 손을 대려던 순간이었다.

탕!

공터에서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다. 밸브를 열려고 손을 뻗었던 군인이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드미트리는 총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오토바이 수십 대가 모랫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왔다. 선두에 있는 여자의 총구에서 뜨거운 연기가 바람에 날렸다.

“뭐… 뭐야 저건?”

드미트리가 놀라 소리쳤다. 자치군도 갑작스러운 오토바이들의 등장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헌터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수개월 간 자신들의 곁을 지켜준 헌터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온 헌터들에게 살려달라고 목이 터질 듯 소리쳤다.

[탕!]

또 총소리가 들리며, 드미트리 옆에 있던 군인이 쓰러졌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사격하란 말이야! 사격!”

드미트리가 소리 지르자 안에 있던 군인들이 뒤늦게 헌터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군인들과 헌터들 사이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양 방향에서 수백 발의 총알을 서로를 향해 퍼붓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총알에 군인들은 몸을 피하기 급급했고 저마다 은폐물 뒤에 숨어 앞을 보지도 않고 총을 쏘아댔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탄 헌터들의 재빠른 움직임에 총알이 빗겨나갔다. 헌터들은 차분하게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으악”

“아악”

빗발치는 총소리에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자치부대 쪽에서 기관총의 묵직한 연발 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던 군인들이 묵직한 바주카포를 들고 와 헌터를 겨냥했다. 포가 발사되자 회색빛 연기 구름을 만들어내며 미사일이 헌터 무리 가운데서 터졌다. 커다란 폭발이 일며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나갔다. 다른 군인들도 바주카를 가져와 쏘아댔다. 곳곳에서 커다란 화염 폭발이 일어나며 오토바이가 터져나갔다.

“여어\~ 애들은 그런 장난감 함부로 만지는 게 아냐!”

하늘에서 제트보드를 타고 내려온 슈프리머가 바주카를 든 군인들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군인들이 튕겨 나갔다.

드미트리는 군인들 사이에 숨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획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아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당장 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가 타고 온 헬기는 진작 박살이 났고 군인들은 점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는 무전기에 대고 공군부대 지원을 요청했다.

공터에 다다른 헌터들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군인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렸다.

“사람들부터 구해! 어서!”

에이프릴이 소리쳤다. 헌터들은 감옥으로 달려가 자물쇠를 부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조심히 내려오세요. 다칩니다.”

오브라이언이 계단에서 정신없이 뛰쳐 내려오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에이프릴. 드미트리가 공군부대에 지원 요청을 했어요. 이제 곧 전투기가 들이닥칠 거예요.”

엘리시아가 에이프릴에게 말했다. 에이프릴이 헌터들에게 전투기가 올 것을 알렸다. 헌터들은 사람들을 포터 쪽으로 이동시켰다. 사람들은 허겁지겁 포터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았고 아직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서로 먼저 갈 것이라고 달려들다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헌터들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어느덧 포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탑승했다. 헌터들은 신속하게 시동을 걸었고 자신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몇몇은 오토바이에 사람들을 태웠다.

“바로 가! 어서!”

여러 대의 포터에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며 엔진이 돌았다. 무거운 바퀴가 돌기 시작하며 헌터들은 급하게 공터를 빠져나갔다. 그때 멀리서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전투기는 포터를 지나쳐 공터 쪽에다 폭탄을 투하했다.

[펑!]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화염이 일며 쓰레기 매립장은 불에 탔다. 사람들과 헌터들은 불타는 매립장을 보았다. 폭탄이 또 한 번 떨어지며 큰 폭발이 일었다. 사람들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힘이 빠진 듯 멍하니 불타는 매립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서로를 끌어안았다.


**************


골든타워의 새벽은 조용했다. 전날 밤의 시끌벅적한 화려함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듯했다. 소로우 강변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조깅하는 남자, 털이 북실북실하게 난 강아지를 줄에 매고 빠른 걸음으로 경보하는 여자, 새벽의 저주에 걸려 낮잠을 잃은 노인들. 강변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긴 코트의 끝자락이 나부꼈다.

헌터는 약속 장소에서 랄프를 30분째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랄프는 나타하지 않았다. 행여 그가 결심을 망설여 어딘가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랄프를 포기할까 고민하다 며칠 전 고깃집 골목에서 굳은 결심을 했던 랄프의 얼굴이 떠올라 헌터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발길을 돌렸다.

랄프가 일했던 가게에서 그의 주소를 겨우 알아냈다. 그곳은 골든타워의 관광지구와 대조되는 허름한 동네였다. 주로 골든타워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동네 입구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뛰어놀고 있었다. 얼굴이 하얀 그가 지나가자 건물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경계하듯 그를 쳐다봤다.

그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랄프의 숙소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벽돌식 허름한 건물은 층이 낮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의 집은 건물 가장 꼭대기 층이었는데 긴 복도식 구조라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은 밝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기분이 좋았다.

헌터가 복도 끝 마지막 방에 이르렀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예상대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가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아주 쉽게 문이 열렸다. 그는 철제식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열려있는지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불은 꺼져 있었는데 밖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이 밝아 안이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헌터는 코를 킁킁댔다. 그것은 평소에 많이 맡던 익숙한, 그러나 썩 기분 좋지 않은 냄새, 피비린내였다. 헌터는 주머니에 있던 은빛 리볼버 총을 꺼내 거실을 지나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문은 조금 열려 있었는데 그가 방문을 확 열어젖히자 안에는 그가 그렇게 찾던 랄프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하얀 커튼이 날렸다. 랄프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끈적끈적한 피가 천천히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다. 랄프의 눈은 뒤집혀 있었고, 입은 턱이 빠진 듯 쩍 벌어져 있었는데 발작을 했었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셔츠의 윗부분이 풀어헤쳐져 있었는데 삐쩍 마른 가슴에 무언가 할퀴고 간 듯 빨간 상처가 있었다. 유심히 쳐다보자 상처가 어떤 문자를 그려놓은 듯했다. 세텔라이트가 상처를 훑고 지나가자 초록색 홀로그램에서는 ‘NEMESIS’ 라는 문구가 나타났고, 밑에 ‘천벌’이라는 뜻의 해석문이 쓰였다.

헌터는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에 놀아난 듯 허탈함을 느꼈다. 그는 멍하니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