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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42. 회상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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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상 Ⅱ



“독불장군식 난민 정책, 즉각 중단하라!”
“배가 고파서 더는 못 살겠다! 우리를 다 죽일 셈이냐!”
“살인마 빅터 시장은 당장 물러나라!”



올림푸스 시티 앞 거대한 시민 광장은 각 군에서 구름 떼처럼 몰려든 수많은 인파의 분노로 펄펄 끓고 있었다. 격분한 시위대는 경찰이 쳐둔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며 청사 건물 입구까지 들이닥쳤고, 진압 방패를 든 경찰들은 밀려드는 군중을 막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광기에 휩쓸린 일부 청년들은 광장의 대형 화분과 조형물을 쇠파이프로 때려 부수며 폭주했다. 거리를 지나가던 보수적인 노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폭도라며 손가락질을 해댔고, 흥분한 시위대는 그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맞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광장 뒤편의 풍경은 앞쪽의 살벌한 대치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한쪽 구석에서는 스피커를 켜놓고 축제처럼 춤을 추는 무리가 있었고, 눈치 빠른 잡상인들은 대목이라도 맞은 듯 카트를 끌고 나와 바쁘게 물건을 진열했다. 사람들은 거센 구호를 외치다가도 따뜻한 길거리 음식을 사 먹으며 시린 손을 녹였다. 시위라기보다는 기이한 열기를 띤 거대한 난장판에 가까웠다.



“실장님. 시장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창밖의 소요 사태를 내려다보며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드미트리는 비서의 호출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의 최상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는 내내, 빅터 시장이 이 소동에 얼마나 불같이 화를 내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입술이 바싹 말랐다.



최상층에 도착한 드미트리는 잰걸음으로 시장실 앞 복도를 향했다. 굳게 닫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수행 비서들이 다급히 나서며 그를 가로막았다.



“실장님, 지금은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무슨 헛소리야! 시장님께서 날 직접 호출하셨는….”



[와장창!]



드미트리의 신경질적인 질책이 끝나기도 전, 굳게 닫힌 시장실 안쪽에서 육중한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곧이어 무언가를 짓이기는 둔탁하고 끔찍한 파열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드미트리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문가로 다가갔다.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시선을 밀어 넣은 그는, 짧은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이 핏빛으로 달아오른 빅터 시장이 한 손에 육중한 크리스털 재떨이를 쥔 채, 누군가의 머리통을 붙잡고 피와 살점이 튀도록 짐승처럼 내리찍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축 늘어져 있었고, 최고급 카펫은 시뻘건 선혈로 질척하게 젖어 들어갔다. 뭉개진 남자의 제복은 분명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서장의 것이었다.



이성을 잃고 한참을 내리치던 빅터는 이내 숨이 차오른 듯 피 묻은 재떨이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 순간, 열린 문틈 사이로 굳어버린 드미트리와 시선이 얽혔다.



살인자의 눈. 철저하게 가려진 장막 뒤에서, 오직 측근들만이 알고 있는 빅터 시장의 진짜 얼굴이었다. 대중 앞에서는 사람 좋은 미소를 흩뿌리고 다니는 온화한 정치가였지만, 분노가 이성을 집어삼키는 순간 그는 지옥에서 올라온 사탄 그 자체였다. 드미트리가 비서실장 자리에 앉은 이후로, 빅터의 손에 직접 짓이겨져 죽은 사람만 벌써 열두 명째였다.



빅터는 아직 살의가 가라앉지 않은 섬뜩한 표정으로 드미트리를 노려보았다. 극한의 공포에 질려 복도 바닥에 얼어붙어 있던 드미트리는, 문밖에서 계속 어물쩍대다가는 자신의 명줄마저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방 안으로 튀어 들어가 빅터의 구두코 앞에 납작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



“비서실장.”



빅터가 지옥 밑바닥에서 긁어 올린 듯한 무거운 중저음으로 불렀다.



“네, 넵!”
“밖에 기어 다니는 저 시끄러운 버러지 떼들은 뭐지?”
“죄, 죄송합니다!”



빅터는 천천히 몸을 돌려 집무실 한구석에 놓인 골프백으로 다가갔다. 번쩍이는 7번 아이언을 꺼내 든 그가 차가운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드미트리 쪽으로 걸어왔다.



“살려주십쇼, 시장님!”



살기로 번뜩이는 아이언의 헤드를 본 드미트리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바닥에 이마를 처박았다. 빅터는 골프채를 들어 올리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경찰서장 시체의 턱 밑을 툭툭 건드렸다.



“어떻게 저 폭도 새끼들이 내 앞마당까지 기어들어 온 거지? 내가 분명 광장 출입 전면 통제 명령을 내렸을 텐데.” 빅터의 입술이 잔혹하게 비틀렸다. “경찰서장이란 놈이 버러지 하나 제대로 밟아 죽이지도 못하면서, 내 앞에서 감히 헌법이 어떻느니, 시민의 자유가 어떻느니 지껄여대고 말이야. 그렇게 법을 잘 아는 똑똑한 새끼가, 지 머리통이 재떨이에 깨져 죽을 건 법전에서 못 읽었나 보지?”



빅터는 소름 끼치게 킬킬거리며 집무실 중앙의 푹신한 소파로 걸어가 팔걸이에 삐딱하게 걸터앉았다. 거친 호흡을 길게 내뱉는 품이, 살인 충동을 조금은 진정시킨 듯했다. 드미트리는 거미처럼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굵은 솔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수습할 거지? 신임 경찰서장님.”



빅터의 뜬금없는 호칭에 드미트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을 치켜떴다.



“전임 서장이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하셨으니,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해서 폭도들을 치워야 할 것 아닌가? 안 그래, 드미트리?”



빅터는 바지 주머니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튄 핏방울을 여유롭게 닦아내며 말했다. 그제야 시장의 의중을 파악한 드미트리가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제가! 제가 당장 깔끔하게 해결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빅터가 성큼성큼 다가가 드미트리의 굳은 어깨 위에 무거운 손을 얹었다.



“난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나약한 단어는 질색이야. 내 뜻,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드미트리가 비장하게 고개를 숙이자, 빅터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뒤로 돌아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드미트리는 다시 한번 깍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도망치듯 피비린내 나는 시장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선 그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저 끔찍한 시위대를 당장 쓸어버려야 내 목숨이 보전된다는 본능적인 공포뿐이었다. 그는 즉각 단말기를 꺼내 올림푸스 시티 내부의 모든 사설 경호 인력과 무장 진압 부대를 1층 로비로 집결시켰다.



잠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진압복으로 무장한 수백 명의 요원들이 청사 정문을 뚫고 나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시위대 앞에 견고한 방어벽을 쳤다.



“마이크 가져와!”



대열의 선두에 선 드미트리가 소리치자, 옆에 섰던 간부가 황급히 무선 마이크를 건넸다.



“아아, 알린다! 현 시간부로 광장에 집결한 귀하들의 행위는 명백한 집시법 위반이자 개인 사유지 무단 침입, 기물 파손 및 교통 방해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선량한 골든타워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우리 경찰은 귀하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최고 수위의 강제 진압을 집행하겠다! 전원 쓸어버려!”



드미트리의 손짓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장 양측을 포위하고 있던 수십 대의 대형 살수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전진했다. 살수차 위에 올라탄 진압 대원들이 거대한 호스의 방향을 맞추자, 엄청난 수압을 머금은 물기둥이 시위대를 향해 무자비하게 뿜어져 나갔다.



“아악!”



대포알 같은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은 사람들이 종이 인형처럼 허공을 가르며 나가떨어졌다. 살을 찢을 듯한 수압에 시위대는 비명을 지르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진열대가 엎어지고 피켓이 꺾이는 혼란의 틈바구니로, 시퍼런 곤봉과 방패를 든 전투경찰 부대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경찰들은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시민들을 향해 자비 없이 곤봉을 휘둘렀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머리가 터진 사람들의 선혈이 빗물 같은 물줄기에 섞여 광장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뒤쪽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영원무궁할 것 같았던 시위대의 거대한 파도는 단숨에 산산조각이 났다. 저항하던 청년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졌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은 머리채를 잡힌 채 경찰차로 짐짝처럼 던져졌다. 자비를 구하며 울부짖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무자비한 물줄기 소리와 폭력에 참혹하게 묻혀버렸다.





***





피의 진압 사건이 벌어진 이후, 여론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일부 용기 있는 언론사들이 무자비한 진압 영상을 여과 없이 생중계했고, 카스트 지부 전역에서 빅터 시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규탄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장실의 전화기는 각계각층에서 걸려 온 항의 전화로 하루 종일 붉은 불을 깜빡이며 울려댔지만, 아무도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꼬박 한 달이 지날 무렵.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드미트리에게 마침내 빅터 시장의 은밀한 호출이 떨어졌다.



각오를 다지며 시장실 문을 연 드미트리는 뜻밖의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폭주하던 사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빅터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집무실의 고급 소파에는 빅터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앉아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짙은 칠흑색 사제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사내였다. 테이블 중앙에는 검은 가죽으로 장식된 두꺼운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는데, 표지에는 황금색 활자로 『cardo』라는 기이한 단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빅터는 멍하니 선 드미트리의 어깨를 감싸 쥐고 소파로 이끌어 최고급 브랜디를 따라주었다. 그리고는 사제 복장의 사내와 나누던 은밀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나갔다.



“예…? 방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브랜디 잔을 입술로 가져가려던 드미트리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지금까지 빅터의 입에서 수없이 황당하고 끔찍한 지시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방금 들은 계획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미친 소리였다.



빅터는 대답 대신 양복 안주머니에서 매끄러운 유리 캡슐 하나를 꺼내 빛에 비추어 보였다. 캡슐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 악마적인 물질을 내려다보며 빅터는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장단을 맞춰야 했다. 드미트리는 빅터의 광기 어린 웃음을 따라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결코 그 소름 끼치는 계획에 동의해서 나오는 진실된 웃음이 아니었다. 빅터는 잔뜩 굳어 있는 드미트리의 손바닥 위에 그 차가운 유리 캡슐을 쥐여주며 속삭였다.



“걱정하지 말게. 내 손으로 피를 묻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 난 곧 지부 행정국의 발령을 받아 더 높은 곳, 코어(Core)로 돌아가게 되네. 내가 떠나면 이 골든타워를 통제할 새롭고 훌륭한 시장이 필요하지 않겠나?”



빅터가 드미트리의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내가 자네를 후임으로 강력하게 추천해 두었지. 드미트리 시장님! 내가 믿을 사람은 자네뿐이야!”



소파 반대편에 앉아 있던 창백한 얼굴의 사제 역시, 알 듯 말 듯 한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드미트리를 응시했다.



그 숨 막히는 권력의 이양과 악마적 거래 앞에서, 드미트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미친 사람처럼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