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40. 간부회의
40. 간부회의
[노크소리]
“아! 들어오세요!”
남부청장 제퍼슨은 올림푸스 시티 최상층 시장실을 찾았다. 문을 열자 그곳엔 빅터와 다른 늙은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이미 술판이 한상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제퍼슨! 우리의 영웅! 어서 와 앉으세요!”
소파 한가운데 앉아 있는 몸통이 크고 우람한 금발 머리 빅터가 제퍼슨을 보며 오른손을 높이 흔들었다. 그는 제퍼슨을 보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는데,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나머지 두 남자도 제퍼슨을 보며 사자 옆에 비굴하게 웃는 여우처럼 미소 지었다. 제퍼슨은 빅터와 남자 둘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남은 좌석에 앉았다. 빅터가 자기 앞에 놓인 빈 잔에 위스키를 따라 제퍼슨에게 권했다. 제퍼슨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받았다.
“헌터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청장님. 벌써 정화율이 90%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저희 골든타워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청장님께서 실력 있는 헌터들을 지원해 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빅터가 제퍼슨을 살살 띄우자 제퍼슨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원들이 고생이죠. 그래도 이전에 투입된 인력들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려 나가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시면 무르만스크도 곧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렴요! 이 지긋지긋한 광인과의 전쟁도 이제 곧 종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참, 내 정신 좀 봐. 두 분 소개를 해드린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여기 왼쪽에 계신 분은 육군북부방위 기갑본부장 「말코」 대령 입니다.”
남색 제복에 검은색 짙은 콧수염이 수북한 남자(흡사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케 했다)가 제퍼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군인다운 반듯한 차림에 커다란 체구, 큰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오른쪽에 계신 분은 공군북부방위 비행단장 「라이너」 준장 입니다.”
군청색 제복에 독수리 배지를 가슴에 단 남자가 제퍼슨에게 인사했다.
“기갑부대와 헌터들이 파견된 것도 이제 거의 반년이 다 돼 가지요? 처음 오셨을 때와는 다르게 광인들이 많이 제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각 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정화율이 90%를 넘어섰기 때문에 이제 어느 정도 사태는 진정되었다고 판단됩니다만. 말코 대령님, 어떻습니까?”
빅터가 기갑본부장을 보며 마치 준비된 질문을 던지듯이 물었다.
“우리 기갑부대로 말할 것 같으면 카스트 지부 북부 방위의 최정예 특수 부대로서, 이런 대규모 재난에 항상 참여해 왔습니다. 우리의 자랑인 장갑 로봇은 혼자서도 능히 100인의 광인과도 싸울 수 있는 엄청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기에, 기갑부대에 대한 경비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지요. 이런 와중에도 저희를 파견할 수 있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아셔야 할 겁니다, 빅터 시장님!”
말코 대령이 생색내듯 말하자 빅터는 어린아이 다루듯 말했다.
“아이고. 그럼요. 당연하지요. 우리 기갑본부장님의 능력이 카스트 지부의 최고인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대령님을 제일 먼저 찾아간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아! 제퍼슨 청장님께서는 이 자리가 의아스러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저희 셋은 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동기입니다. 그때만 해도 철부지 학생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다들 자기 분야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 있지 뭡니까? 하하하!”
“좋은 친구들을 두셨군요.”
제퍼슨은 대충 맞춰 대답했다.
“좋은 친구요? 엄청난 사고뭉치였죠. 허구한 날 다른 학교 여학생 뒷꽁무니만 쫓아다니고 담당 교수에게 붙잡혀 반성문 쓰고 봉사활동 처분받고. 그 생활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군요. 하하. 아, 그건 그렇고. 우리 헌터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이제 곧 공군에서도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죠? 라이너 준장님?”
“이미 카스트 지부에서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정화율이 90프로에 육박한 시점에서 남은 구역에 대해서는 저희 공군이 폭격기를 투입해 남은 광인들을 모두 소각할 계획입니다.”
라이너 준장은 선심을 쓰는 마냥 이야기했다.
“폭격기라뇨? 폭탄 투하라도 하실 작정인가요?”
제퍼슨은 뜻밖의 말에 놀란 듯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헌터들과 기갑부대의 무고한 희생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데 합동참모본부에서 의견의 일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지역에 민간인이 있을 텐데요?”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미 대부분의 생존 인력들은 피난처로 이송된 상태이고, 남은 지역의 경우 전문가들이 감염균을 놓고 시뮬레이션을 해본 바로 6개월이 경과한 현시점에서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이 된 겁니다.”
빅터가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제퍼슨은 빅터의 말을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이송되지 않은 민간인들은 이미 광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입니다.”
“무슨 그런…”
제퍼슨은 표정이 굳었다. 빅터의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다른 세 명도 제퍼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자신들의 의사가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것 같아 긴장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퍼슨 청장. 이건 어디까지나 전문가들이 판단한 결정이고, 지부에서 허가받은 상황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따르면 될 뿐이죠.”
“지금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무고한 희생을 만들자는 것 아니오?”
제퍼슨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빅터는 제퍼슨의 화난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성격이 재발해 얼굴에 경련이 일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뭘 그리 흥분하는 겁니까, 청장님. 청장님 입장에서 헌터들이 더 이상 희생되는 것은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남은 헌터들도 오랜 기간 파견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빅터의 말에 제퍼슨은 허를 찔린 듯 반박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뭔가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나 명분과는 다른 판단에 계속 반박해야만 하는 기분이었다.
“무고한 희생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 저도 이해합니다. 청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관할 시장인 제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지도자는 때론 냉철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 없을 땐 말이죠. 지금은 남은 사람들의 안전과 골든 타워의 재건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청장님께서 이해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퍼슨은 말이 없어졌다. 그는 그런 처사를 용인하라는 시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저 지원 부대의 우두머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음이 들끓었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말은 무의미해 보였다.
“청장님께서도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아마 남부의 헌터들을 이곳에 집중하다 보니 관할 구역에서도 인력이 부족할 테고요. 더 이상 지원이 어려우시면 파견된 헌터들은 모두 철수하셔도 좋습니다. 그동안의 지원으로도 저희 골든타워는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빅터의 말에 제퍼슨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빅터는 처음부터 이럴 심산으로 헌터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허무했지만 이미 짜여진 판에 이용당한 자신만이 더 처량해질 뿐이었다.
“시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마울 뿐이군요.”
그는 손에 든 위스키 잔을 한 잔 쭉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뒤를 돌아 방문을 열었다. 그러다 문득 한마디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 빅터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씀을 안 드렸군요. 이번 광인 사태가 자연사가 아닌 계획된 사고라는 의혹이 저희 정보부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싱글싱글 웃던 빅터는 제퍼슨의 말에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얼마 전 저희 요원을 통해 정수장 CCTV와 주요 인물의 신상 정보가 수집되었는데, 조사 결과 한날한시에 각 군의 정수장에 바이러스균을 퍼뜨린 조직된 행동이 있었더군요.”
“조직된 행동이라뇨?”
“아마 누군가 무르만스크에 앙심을 품고 이런 비극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저희는 매우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조만간 그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질 것 같다는 겁니다.”
빅터의 가슴에 제퍼슨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러다 입가에 미소를 실룩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게 누군지 궁금하군요.”
“그렇죠? 조만간 밝혀지는 대로 제일 먼저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제퍼슨은 쓴미소를 지으며 시장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