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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39. 일상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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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일상 Ⅱ



“여기 좀 도와주세요.”
“셋 하면 놓습니다. 하나, 둘…”



남자들이 깊은 구덩이 속으로 광인들의 시체를 던졌다. 시체는 역병이 돌아 폐사 처리된 돼지 사체처럼 겹겹이 포개져 쌓여 갔다. 짓눌린 시체 사이로 빠져나온 손, 관절과 반대 방향으로 기괴하게 구부러진 발, 목이 꺾인 채 뒤로 늘어진 머리. 그 흉물스러운 무덤은 보기만 해도 속이 거북해져 먹은 것을 게워 내게 했다.



코랄 지구에서 전투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났다. 피난처에도 광인의 공격이 잦아들며, 잠깐의 휴식이 찾아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를 광인들을 대비해 방어 시설을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길 곳곳에는 널브러진 광인들의 시체에서 썩은내가 진동했다. 큰 구덩이에 시체가 가득 쌓이면, 장갑 로봇이 거대한 팔에서 화염방사기를 꺼내 시체를 불태웠다. 검은 연기가 먹구름처럼 하늘을 가득 메웠다.



“뭔 놈의 시체가 이렇게 많아. 허리 아파 죽겠네.”
“아, 배고프다. 오늘은 언제 밥 먹을 수 있을까.”



3군 본대가 전멸한 후 중앙 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생존자들은 남은 보급품으로 계속 버텨야 했다. 여자들은 보급 식량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민했다. 20개의 옥수수 수프를 한데 모아 물을 섞어 양을 불린 뒤, 8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먹었다. 주먹만 한 빵 하나를 조각내, 다섯 사람이 나눠 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에이프릴과 두 남자는 구덩이 옆에 앉아서 불에 타들어 가는 시체를 보며 쉬고 있었다.



“저, 여기.”



한 여자아이가 에이프릴에게 다가가 빵을 건넸다. 에이프릴은 아이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가 에이프릴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였다. 에이프릴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언니를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는 에이프릴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슈프리머와 오브라이언은 여자아이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프릴은 꼬마가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생각하다 갑자기 여자아이의 얼굴이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얼굴을 붉히더니 에이프릴의 손에 무언가 쥐여 주고는 후다닥 뛰어 돌아가 버렸다.



“팬인가 본데? 그새 유명해진 거야?”



슈프리머가 빈정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좀 예쁘니까. 왜? 부러워?”
“아, 예\~”



에이프릴은 슈프리머를 보며 웃었다.



피난처 외곽 경계 근무는 헌터와 민간인 남자들이 같이 섰다. 사람이 부족해 교대 근무가 어려워지자, 몇몇 헌터들은 아예 초소에 자신의 짐을 옮겨 밤낮으로 경계 근무를 섰다. 기약도 없는 시간 죽이기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 갔다.



“어디서 오셨어요?”
“라푸냐에서 왔죠.”
“멀리서 오셨네요. 그래도 같은 지부 사람이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가네요.”
“다른 지부에서도 지원이 왔어요?”
“아니요. 여기 무르만스크에는 카스트 지부 사람들 말고도 예전에 없어진 타미안, 훅, 이카드로, 탄젼 지부 피난민들이 많이 있죠. 처지가 딱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지부 사람들이다 보니 사고방식도 다르고 좀처럼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아, 그렇긴 하죠.”



헌터는 씁쓸하게 웃었다.



“피난민들 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힘들게 받아줬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뭘 그렇게 나대는지 원. 그 특유의 쓰잘데기없는 자부심 같은 거 있잖아요? 예전에 식당에서 일할 때 탄젼 지부 사람이 새로 들어왔었는데 그 자식이 딱 그랬죠. 피부도 까무잡잡한 것이 되게 못생겼는데, 이 녀석은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거예요. 그런 인간 말종이랑 어떻게 동료가 될 수 있겠어요? 매니저에게 해고하라고 했더니 얼마 뒤 제 주급을 깎겠다는 거 있죠? 무슨 황당한 소린가 해서 알고 봤더니, 그 탄젼 지부 놈의 주급이 제 주급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더군요. 근데 저랑 일하는 수준이 비슷해지니까 제 주급을 깎겠다는 거예요.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말이죠. 정말 여기 무르만스크는 피난민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남자는 푸념하듯 말했다.



“세상이 정말 종말에 가까워지는지 모르겠어요. 계속해서 지부가 없어지고 있잖아요? 화산 폭발도 일어나고. 제가 살던 곳은 광인 천지가 되었으니. 이제 모두 끝장인 거죠.”
“아, 저기 교대 근무자군요.”



헌터는 남자의 자조적인 말이 더는 듣고 싶지 않은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가리켰다. 하지만 남자는 그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게 따지고 보면 다 시장 때문이죠.”
“누구요? 빅터?”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헌터를 보며 말을 이어가려던 남자는 고개를 홱 돌렸다. 에이프릴이었다. 새로운 말상대가 생긴 남자는 신이 나 설명을 이었다.



“그럼요! 망할 시장놈 빅터! 이게 다 신 피난민 이주 정책인지 뭔지 때문 아닙니까. 안 그래도 골든 타워 밖의 사람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데 거기에 피난민까지 끌어들였으니. 골든 타워 놈들은 불똥이라도 튈까 아주 문을 꽁꽁 닫아걸고, 헐값에 일꾼들을 사들이게 됐다고 좋아하고 있죠. 우리 같은 성밖 노예 인생들만 피난민보다 못하게 되어 버린 거죠. 물가는 올라, 임금은 깎여, 골든 타워 녀석들은 나날이 살쪄. 이게 종말이 아니면 뭡니까? 참다못한 사람들이 타워 앞으로 몰려가 시위하고 아우성친 것도 벌써 몇 년째인데. 빅터 시장은 신경도 안 쓴다고요. 그 사람 관심은 다음에도 표를 줄 골든 타워 돼지들뿐입니다. 썩은내는 거기가 사실 더 진동하죠.”



그 순간, 조용히 있던 무전기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먼 하늘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구조 헬기가 피난처를 향해 날아왔다.



“P1. P1. 집결지 도착, 호송 예정!”



헌터들은 영문을 몰라 두리번댔고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불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몇몇 무르만스크 사람들은 질린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문이 열리고 번드르르한 양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실크 손수건으로 우아하게 코를 가리며 내렸다.



“미스터 드미트리 납시셨군요.”



비꼬는 주민들의 인사를 깡그리 무시한 채 드미트리는 활짝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접시에 꿀을 바른 듯 매끄럽고 막힘이 없었다.



“안녕들 하신가요? 이 시각 이후로 주민 여러분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 조치됩니다.”
“뭐요? 그게 무슨 말이오?”
“주민들의 영양 상태가 엉망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이곳 주민들은 시에서 직접 관리하기로 했죠. 우린 이미 여러분을 먹일 식량과 의약품, 간이 쉼터까지 다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분명 뒷꿍꿍이가 있을 거예요! 언제부터 시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단 말이죠? 분명 저들은 우리를 데려간 뒤 쥐새끼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할 겁니다. 우릴 길들일 거예요!”
“이보시오! 거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쥐새끼라니? 여러분을 위해 이 위험한 곳까지 온 사람들에게 고작 할 말이 그것뿐인가요?”



드미트리의 말에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자, 여러분. 계속 이렇게 저랑 말다툼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겁니까? 제가 알기로 보급품이 끊겨서 며칠째 굶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뭣들 하는 거죠? 빨리 가서 보급품을 받아 가세요! 가서 여러분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란 말입니다!”



드미트리가 재차 다그치자, 사람들은 방금까지 말다툼은 잊어버리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보급품 창고를 향해 뛰어갔다. 보급품 창고 앞엔 이내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사람들은 서로 먼저, 그리고 많이 받아 갈 것이라 소란을 피우며 언성을 높였다. 멀리서 드미트리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비웃듯이 미소 지었다. 에이프릴 역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들을 도와 보급품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봐요. 헌터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유감스럽지만 헌터분들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러분들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마 곧 국방부에서 새롭게 부대를 파견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지금부터 헌터분들은 더 이상 보급품 지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저희 시에서 직접 관리하기로 했으니까요. 또 하나! 여기 민간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 굉장히 예민한 상태입니다. 어떤 말에도 쉽게 동요되기 마련이지요. 서로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 시간 이후로는 민간인과의 접촉을 중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귀찮은 일 하나 줄었으니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드미트리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헌터들 사이에서 나와 자신이 타고 온 헬기를 타고 떠나 버렸다. 그가 데리고 온 자치군들은 민간인들과 함께 피난처에 남았다. 헌터들은 피난처에서 쫓겨나듯 떨어져 나와 광인들이 득실거리는 코랄지구 초입에 초소를 세웠다. 기갑본부에서 닉을 기갑부대 임시 중대장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