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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38.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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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바이러스



코비의 연구실.



남부청장 제퍼슨과 수행비서 안드레아가 소파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코비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렌즈에 가까이 갖다 대고, 재물대에 있는 유리접시(샬레)를 살살 움직였다. 상이 잡히자 현미경 조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초점을 잡았다. 다시 눈을 뗀 코비는 우측 벽면에 붙어 있는 커다란 스크린의 전원을 켜 현미경이 비춘 내용물을 보였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병원체인 바이러스…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했으니 편의상 「바이러스 X」라고 하겠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바이러스는 흑백의 크고 하얀 원형에, 겉에는 작은 돌기가 원주를 따라 붙어 있었다. 작은 돌기들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이 하얀 돌기들은 스파이크 단백질이라는 건데, 쉽게 생각해 바이러스의 손과 같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이 단백질들이 다른 세포와 결합해 안에 있는 DNA를 퍼뜨리게 되는데, 면역 체계에서는 이 단백질, 바이러스의 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코비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바이러스마다 돌기가 다른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열쇠의 톱니 부분처럼 말이죠. 그래서 백혈구가 와도 열쇠의 암호를 풀지 못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면 암호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코비는 옆에 있던 알코올 램프를 들고 오더니 샬레를 위에 얹어 놓고 불을 붙였다. 심지로부터 부드럽게 올라온 불꽃은 샬레 밑바닥을 조용히 데웠다. 제퍼슨과 안드레아는 그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코비는 다시 샬레를 현미경의 재물대 위에 얹었다. 그러자 화면에는 다시 아까와 같은 흑백 원형 물체가 나타났다.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감염 경로를 통해 인체 내로 들어와야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온도에 취약합니다. 아주 춥거나 또는 아주 뜨거우면 자연 소멸하게 되죠. 그런데 이 바이러스 X는 특이하게도 겉을 감싼 이 단단한 단백질 막 때문에 아무리 뜨거운 온도에서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죠. 보세요. 아까와 별반 차이가 없죠?”



제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하나. 감염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생존 기간인데, 아시다시피 바이러스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번식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감염체를 찾아다녀야 하지요. 그러려면 감염 경로 중에 계속해서 살아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바이러스는 최대 3일. 그 이상이 되면 자연 소멸하게 됩니다. 그런데…”



코비는 어디론가 가더니 똑같은 모양의 샬레를 들고 와 재물대의 그것과 바꿨다. 화면에는 역시나 변함없는 모양의 원형체가 보였다.



“북부에서 처음 대량 광인 사태가 발생했다고 했을 때 수집된 샘플입니다. 약 3달이 지났겠군요. 그런데 화면에서 보시다시피 살아 있습니다. 사람도 어떤 영양소 없이 한 달을 못 버틸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엄청난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코비가 하려는 말을 이제 좀 이해한 듯 제퍼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제부터 하이라이트를 보여 드릴 건데…”



코비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는 듯 머뭇거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 할까요?”
“빨리 해.”



제퍼슨은 코비의 비아냥거림에 기분 나쁜 듯 퉁명스럽게 답했다. 코비는 앞에 있던 책상을 어디론가 치우더니 검은 천으로 감싼 네모난 물체가 올려진 책상을 밀고 왔다. 그가 천을 치우자 네모난 유리 안에 하얀 쥐가 보였다. 특이한 것은 쥐가 고정되어 있었는데, 제퍼슨이 유심히 쥐를 살피자 갑자기 옆에 있던 안드레아가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전 동물을 사랑합니다. 집에 저만 기다리고 있는 식솔들이 10마리나 되죠.”



쥐는 산 채로 머리가죽이 벗겨져 하얀 뇌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퍼슨은 인상을 찌푸렸다. 코비는 케이블이 연결된 아주 얇은 주사바늘이 달린 선을 끌고 와서는 쥐의 뇌에 꽂았다. 그리고는 작은 주사기를 꺼내더니 샬레에 있던 액체를 뽑아 쥐의 엉덩이에 주입시켰다. 세텔라이트가 쥐의 표면을 근접 촬영하기 시작했다.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에 다른 화면이 나타났는데 쥐의 내부 혈관이 보였다. 그가 ‘추적’하고 명령어를 대자 화면이 둘로 쪼개지며 왼쪽 화면에는 아까 봤던 바이러스가 동전만 한 크기로 쥐의 혈관을 타고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화면은 쥐의 전체 모습을 촬영한 듯 보였는데 빨간 점이 깜빡이며 쥐의 엉덩이에서 표시되었다.



“잘 보십시오. 이 동그랗게 큰 원형 구체가 백혈구입니다. 바이러스가 이 사이를 유유히 통과하는 게 보이시죠? 백혈구가 면역 기재를 일으키기는커녕 바이러스의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바이러스는 백혈구 사이를 피해 점점 쥐의 몸 상체로 이동했다.



“아까 마저 설명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요. 바이러스도 낯가림을 한단 말이죠. 열쇠 모양, 기억하시죠? 바이러스도 자신에게 맞는 모양의 세포를 찾아야만 번식이 가능하단 말이죠.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혈관을 타고 지나갔다. 처음엔 허리 부근으로 가더니 그다음 심장쯤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러다 다시 움직여 목으로 가더니 이내 뇌에 이르렀다.



“이 바이러스는 뇌에서 번식할 모양이군요. 그럼 더 리얼한 장면으로 한번 볼까요?”



코비가 다시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다른 화면이 나타났는데, 화면에 동그랗고 커다란 구체가 나타났고 아까와는 다르게 안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심층자기광학촬영이라는 것인데, DNA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색깔을 좀 입혔습니다. 이제 바이러스가 목적지를 찾으면 감염을 시작할 겁니다.”



코비의 말대로 바이러스는 계속 뇌 혈류를 타고 구석구석을 돌더니 해마 부근에 이르러서야 멈추었다. 마치 캐치볼하듯 하얀 단백질 돌기들이 뇌세포에 달라붙기 시작했는데, 조금 있자 바이러스 안에서 어떤 주황색 물질이 뿜어져 나오더니 세포막을 뚫고 단백질 돌기들과 같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곧 바이러스 안에서 꿈틀대던 검은 물체가 무언가를 인식한 듯 마구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몸을 이동시켜 뚫린 구멍 사이로 몸을 쑤셔 넣어 뇌세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뇌세포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물체들이 보였는데, 이동하던 검은 물체가 갑자기 움찔거리더니 폭발하듯 터지면서 사방으로 검은 조각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검은 조각들은 뇌세포 안의 여러 물체들에게 달라붙어 표면을 감싸더니 독이 퍼지듯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검은 바이러스에 DNA를 점령당한 뇌세포는 요동치며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자에게 목덜미를 잡힌 노루 새끼처럼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듯해 보였다. 이윽고 힘이 빠진 듯 뇌세포의 움직임이 사그라들더니 메말라 버린 듯 탄력을 잃고 푸석푸석하게 굳어 뇌세포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뇌세포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는 듯했고, 잠시 뒤 그 갈라진 형태가 뚜렷해지더니 한 덩이 한 덩이가 작은 바이러스와 같은 형상을 보였다. 코비는 이때 버튼을 눌러 화면을 축소했다. 그러자 화면 전체에 동전 크기만 한 검은 물체들이 뇌세포 무리 전역에 독처럼 퍼진 모습이 나타났다. 제퍼슨과 안드레아는 그 거대한 바이러스 무리들로 이루어진 화면에 충격을 받은 듯 창백해졌다.



“감염이 어느 정도 진행된 듯 보이는군요. 주입한 지 약 10분 정도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냅스가 보내는 전기 신호를 시각화한 화면인데…”



코비가 버튼을 누르자 아까와는 전혀 다른 까만 화면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얀 빛줄기들이 화면 전체에서 산발적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마치 쥐의 몸 안에 하나의 소우주가 있는 듯 아름다워 보였다.



“뇌에서 각 신경세포로 전기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감염체의 경우 이 전기 신호가 정상이었을 경우보다 훨씬 많이 발생합니다.”



코비의 말대로 각 빛줄기에서 빛을 내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왼쪽 상단에 표시된 쥐의 심박 수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뇌를 잠식한 바이러스는 각 신경계를 자극해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만듭니다. 각종 호르몬들이 비정상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죠. 비정상적으로 빨라진 체내의 흐름은 영양 결핍을 야기하고 극도의 허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곧 다른 영양소를 필요로 하게 되죠.”



코비가 세텔라이트에게 ‘해제’라고 명령어를 내리자 곧 쥐를 고정하고 있던 모든 장치들이 풀렸다. 그리고 유리상자로 또 다른 하얀 쥐를 넣었는데, 감염된 쥐는 천천히 새로운 쥐에 다가가더니 몸의 구석구석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돌변하며 커다란 앞니로 새로운 쥐를 물기 시작했다. 제퍼슨과 안드레아는 놀라 소리쳤고 코비는 재빠르게 유리상자를 검은 천으로 덮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코비가 세텔라이트에게 ‘가스’라고 말하자 유리상자에 연결되었던 관에서 하얀 수면 가스가 쉭 하고 뿜어져 나왔다. 잠시 뒤 쥐의 비명 소리는 멈추었고 실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제퍼슨은 많이 놀란 듯 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안드레아는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됐어!”



제퍼슨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많이 놀란 듯했다. 광인이 날뛰는 것도 많이 봤으며, 머리통에 피가 철철 흐르는 잔혹한 장면도 많이 본 그였지만 이렇게 변해가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긴장감 있게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코비의 실험은 몰입도가 높았다. 코비는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싶어 천진난만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제퍼슨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해결책은 있나?”
“지금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암호를 풀고 있습니다.”
“언제쯤 될 것 같나?”
“글쎄요. 이건 확실치가 않습니다. 거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백신에 대한 실험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만 해당되는 예방책이라는 것이죠. 아까도 보셨겠지만 바이러스가 기존 세포에 투입돼 DNA를 파괴하는데, 기존 세포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감염된 자들은 되돌릴 수는 없단 이야기죠.”



제퍼슨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지만 전문가로부터 내심 신박한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이건 저희 관내 요원으로부터 접수한 CCTV 영상인데 이번 감염 사태에 대한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



코비는 제퍼슨의 얼굴 상태를 보며 틀지 말지 고민했다.



“틀어 봐.”



제퍼슨은 영상을 말없이 보았다. 영상이 끝날 무렵 눈이 빛나더니 코비에게 말했다.



“여긴 어디지?”
“8군에 있는 서부 정수장입니다. 출입 기록부를 확인해 보니 저 시간대에 출입한 차량에 대한 기록이 없더군요. 뭔가 이미 알고 있는 듯한데 말이죠.”



제퍼슨은 말없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코비가 말을 이었다.



“무장한 쪽은 작정하고 은폐한 상태라 정보가 부족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당시 근무 중이던 정수장 직원을 찾아봐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저날은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저 친구 하나인데 말이죠.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건 누가 맡았지?”
“앤더슨입니다.”



제퍼슨은 예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원에게서 연락이 오면 실시간으로 보고하게. 그 남자. 이번 사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르니.”



제퍼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코비의 실험실을 나갔다. 코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