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33. 의사
33. 의사
필립이 가르쳐 준 장소에 이르자 커다란 교회가 나타났다.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는데, 노트르담 성당처럼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이었다. 성당 입구를 한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자는 총을 든 헌터 두 명과 소년들을 보자 오묘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우린 정부에서 파견된 헌터요. 여기 의사 선생이 있다고 들었소만.”
프링글이 답하자 남자는 경계 태세를 살짝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다치신 겁니까?”
“아니. 길 건너에 부상자가 있소. 의사 선생을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받았소.”
“의사 선생님들은 안에 계십니다만… 지금 환자가 너무 많아 힘드실 겁니다. 들어가 보시죠.”
남자가 자리를 비켰다. 프링글 일행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온통 간이침대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렸다. 꼭 야전병원 같았다. 간호사들은 빠른 걸음으로 환자들을 찾아 돌아다녔고, 성당 한쪽 벽면에는 예배 의자가 길게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진찰받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열이 나 울고 있는 아기와 아기를 달래는 엄마, 한쪽 어깨가 빠진 듯 팔을 잡고 있는 남자,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얼핏 봐도 의사 수가 많이 모자라 보였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성당 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자비로워 보였다.

단상 옆에서 젊은 신부가 환자들을 받고 있었다. 프링글 일행이 젊은 신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사람들이 총을 든 그들을 주시했다.
“의사 선생을 찾으러 왔소.”
“진료를 보실 건가요?”
“아니. 우린 의사 선생을 데려다 달라는 요청을 받았소.”
“지금은 어렵습니다. 보시다시피 환자들이 많아 외진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프링글은 얼굴을 돌려 뒤를 보았다. 환자들은 다들 어두운 얼굴로 고통을 참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환자가 이렇게나 많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응급환자요. 그대로 두면 죽을 것이오.”
“죄송합니다. 지금은 선생님들이 다 진료 중이시라…”
젊은 신부는 프링글의 말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프링글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는데, 다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살피며 간호사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환자를 살피고 있는 의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 눈에는 그저 평범한 진찰로만 보였다. 그때 멀리서 총을 든 헌터들을 지켜보고 있던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는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아 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의사요?”
“그렇소만.”
“우린 정부에서 파견된 헌터요. 길 건너 응급환자가 있어 의사 선생을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소.”
“환자 상태가 어떻습니까?”
“고층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소.”
의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마음을 먹은 듯 말했다.
“내가 직접 가드리겠습니다.”
“안 됩니다, 선생님. 요 근래 진료로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셨잖습니까. 그러다 쓰러지십니다.”
젊은 신부가 의사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바람도 쐴 겸 잠시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는 젊은 신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
프링글 일행은 의사와 함께 성당을 나섰다. 하늘에 먹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병원에서 진료하지 않은 겁니까?”
프링글이 물었다.
“병원엔 광인들이 있어 갈 수 없습니다.”
의사의 대답에 프링글은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광인이 많아진 건가요?”
로앤이 물었다.
“이곳 광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자연발생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생김새나 발작 증상이 비슷하긴 하지만 광인에게서 나오는 변형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발작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죠. 「감염」이죠.”
“감염?”
“통상의 대유행성 감염은 공기 중 기관계통으로 전염돼 구토나 발열을 유발시켜 내부 장기를 파괴시키는 행태를 보이죠. 과거의 페스트가 그랬죠. 이런 감염은 빠르게 전파되기 때문에 무르만스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무르만스크 지역에만 한정해서 발생했습니다. 또 단순히 구토나 발열 등 자기 파열적인 과거 감염 증상과는 달리, 감염체가 심각한 정신착란과 함께 공격성을 띠고 있죠. 그 말은 바이러스가 기관계통으로 가지 않고 사람의 뇌로 갔다는 겁니다.”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나요?”
“아니요. 통상의 바이러스는 숙주가 죽을 때까지 면역체와 싸우며 끊임없이 자기파괴적인 행태를 계속합니다만, 이곳 광인들은 보시다시피 굶어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서 숙주를 살리기 위해 에너지원를 찾아다닙니다. 그것이 동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필립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었소만, 수도관에 바이러스가 퍼진 것 같다고 하더군. 그 부분에 대해서 뭔가 조사된 게 있소?”
“글쎄요. 이곳에선 그런 조사나 백신 개발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당장 감염체에게 물리면 똑같은 감염 증상을 보이게 되니 도망치는 데 급급할 뿐이죠. 시에서 이미 샘플을 채취해 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바이러스를 조사한다고 해도 새로운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릴 겁니다. 그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고 없을 테죠.”
의사는 많이 지쳤는지 말을 끝냈다. 프링글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프링글 일행이 길을 가는 동안 비가 더 심하게 내렸다.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로로 이동했다. 지하도로에는 버려진 차들이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차들 사이를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저만치 멀리서 광인의 신음 소리가 지하도로의 천장을 타고 울려 퍼졌다. 프링글은 일행들에게 고개를 돌려 대기하라는 표시를 하고는 조심히 차 위로 올라갔다. 광인들이 지하도로 이곳저곳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광인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프링글은 아이들에게 의사와 함께 뒤쪽으로 빠져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브라켓과 함께 총을 꺼내 소음기를 장착했다.
[퉁]
프링글의 총에 가까이 있던 광인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광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주변에 있던 광인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프링글은 얼른 얼굴을 바닥에 붙여 몸을 감췄다. 광인들은 흥분한 듯 격한 신음 소리를 냈지만 헌터들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다시 몸을 세워 이번엔 브라켓이 멀리 있는 광인을 향해 총을 쏘자 광인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둘은 서로 번갈아 가며 총을 쏘고 숨기를 반복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광인이 다 쓰러지자 그들은 차에서 내려와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그리곤 방치된 차들로 이뤄진 미로 속으로 한걸음씩 전진해 나갔다.

빗소리가 더 거세게 들렸다. 하수구로 물 빠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멀리서 먹구름이 그르렁거리며 울어대더니 지하도로 반대쪽 입구에서 번쩍하며 빛이 깜빡였다. 그 뒤로 박이 깨진 듯 크게 천둥소리가 들렸다. 프링글 일행이 지하도로의 중간쯤 갔을 때 로앤이 일행을 잠시 세웠다.
“이 버스 앞에 광인이 있는 것 같아요.”
프링글은 로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은 같은 위치에서 걸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곱상한 외모의 도련님이 자신이 보지 못한 시야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다 생각하여, 프링글은 버스를 등지고 조심히 걸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정말로 버스 건너편에 광인 세 명이 서 있었다. 프링글과 브라켓은 조심히 모퉁이를 돌아 광인의 머리를 조준했다. 둘이 격발하자 앞에 있던 광인 둘이 쓰러졌다. 뒤에 있던 광인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프링글을 향해 달려왔다. 프링글은 재빨리 총구를 올려 광인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가까이서 달려오는 광인의 머리를 저격총으로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총알이 광인의 몸을 뚫고 들어갔지만 광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 듯 달려와 프링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프링글은 재빨리 총으로 몸을 막았다.
[퍽!]
순간 날카로운 바람이 일며 프링글의 앞에 있던 광인의 머리통이 몸에서 분리돼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쓰러진 몸뚱어리 너머로 윌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희들.”
프링글은 잠깐 정신을 놓은 듯 멍하니 있다가 일어섰다.
“괜찮으세요?”
“그래.”
프링글은 뒤에서 다가와 말을 거는 로앤과 윌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핫,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 역시도 이 어린 친구들이 헌터가 아닌 단지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본부에서 헌터 라이선스가 나왔다는 것은 분명 이 소년들도 광인을 상대할 정도의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일 텐데, 자기도 모르게 이 소년들의 능력을 무시했던 것이다. 그도 이런 선입견에 쉽게 빠져버릴 만큼 늙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무사히 지하차도를 건너 필립이 가르쳐 준 건물에 이르렀다. 프링글이 문을 두드리자 2층 창문을 열고 한 남자가 나타나 그들을 훑어보더니 프링글의 얼굴을 알아본 듯 후다닥 내려와 문을 열어주었다. 의사는 곧장 남자의 안내를 받아 4층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환자는 왼쪽 다리가 부러진 듯 흰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는데, 붕대를 풀자 다리가 퉁퉁 붓고 뼈가 튀어나온 틈으로 피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의사는 재빨리 자신의 가방을 열어 마취제를 꺼낸 뒤 치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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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를 입은 네 명의 남자가 비를 맞으며 동네를 정찰했다. 선두에는 풍이 서 있었는데, 그는 한 건물로 재빠르게 들어가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풍이 고개를 돌려 시드를 바라보자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3층 벽돌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카페인 듯 책상과 의자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미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듯했다.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또 한 번 검은 물체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물체의 행적을 따라 조용히 숨을 죽이며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갔다.
바깥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벼락이 치자 컴컴한 내부가 한순간 밝아졌다가 다시 암흑으로 변했다. 풍이 소총에 달린 조명을 이리저리 밝히며 움직였다. 벽면에 달린 선반에는 책, 액자, 화분 따위가 있었는데 꽃은 물을 얻지 못해 죽은 듯 바싹 말라 있었다. 풍이 선반에 놓인 책을 들어 조명을 밝혔는데, 책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먼지를 쓸어내리자 『페스트』라는 검은색 글씨가 보였다. 그때 뒤에서 시드가 휘파람을 짧게 불자 앞에 있던 풍과 지미가 뒤를 돌았다. 시드는 2층 구석에 있는 흡연실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시드는 조용히 검은 물체가 가까이 있는 유리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총소리]
유리창이 깨지자 안에서 한 남자가 살려달라고 반복하며 소리를 질렀다. 시드는 남자가 광인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자 재빨리 다가가 남자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머리에 총알 박히기 싫으면.”
입을 틀어막힌 남자는 신음 소리를 내다 시드의 매서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코로 큰숨을 반복해서 쉬며 덜덜 떨었다. 시드는 남자의 눈을 쳐다보며 말없이 있다가 그가 진정된 듯하자 천천히 입에서 손을 떼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남자는 시드의 질문에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 주민이에요…”
“왜 여기서 혼자 얼쩡거리는 거지?”
“…쫓기고 있었어요…”
“쫓기다니? 누구한테?”
시드는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광… 광인이요!”
시드가 남자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듯 뒤에 있는 동료들을 한번 보더니 다시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청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밖에서 험한 일을 많이 경험한 듯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일단 광인은 아닌 것 같으니 총은 거두시죠, 시드 씨.”
풍이 자신의 소총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시드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권총을 내려놓으며 압박하고 있던 왼손을 펴 멱살을 놓았다. 남자는 겨우 숨을 돌린 듯 안도해하며 몸을 일으켰다.
“혼잔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피령 못 들으셨어요?”
“집 근처에… 광인들이 들이닥쳐서… 쫓기고 있었어요.”
풍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절차적인 거긴 한데, ID카드 주시겠어요?”
남자는 풍의 말에 주머니에 있던 카드를 건넸다. 풍은 주머니에서 기기를 꺼내 ID카드를 스캔했다.

그러자 화면에 “랄프”라는 이름으로 남자가 조회됐다. 남자의 거주지는 그들이 정찰 중인 5군이었다. 풍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에게 ID카드를 돌려주었다.
“어쩌죠?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흠.”
시드는 난감한 듯 까끌까끌한 수염을 한번 쓸더니 팔짱을 꼈다.
“갈 데는 있나?”
“골든 타워로 가는 중입니다…”
“골든 타워?”
“그곳에 친구가 있어요.”
“걸어서 가기엔 조금 먼 거리 아닌가요?”
“…”
풍이 시드를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본부로 데려가죠. 감염 여부도 확인해봐야 할 테니.”
뒤에서 듣고 있던 지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드는 지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그냥 저를 못 본 척하시면 안 될까요?… 번거로우실 것 같은데…”
남자는 자신을 놓아주길 바라는 듯 돌려 말했다.
“그럴 순 없지. 어쨌든 우리에게도 규칙이 있으니.”
시드는 남자의 의견을 단박에 쳐내고 몸을 돌렸다. 풍은 남자를 보며 안됐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시드를 따라갔다. 남자는 일이 꼬인 듯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풍의 뒤를 따라갔고, 그 뒤로 지미와 제프가 따라갔다.
**************
의사가 겨우 응급치료를 끝낸 듯 땀을 닦았다. 프링글은 의사에게 다가가 물을 건넸다. 의사는 말없이 물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한숨을 돌렸다.
“어떻게 봉합은 됐지만 상처가 곪을 수 있으니 병원으로 옮겨야 될 겁니다.”
프링글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거요?”
“아직은요. 하지만 피를 좀 흘렸으니 저체온 증상이 나타날 겁니다.”
“아니, 당신 말이요.”
의사는 프링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비꼬는 듯 말했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프링글은 의사의 말에 한방 먹은 듯 웃었다. 의사는 앞에 있는 늙은 헌터를 야속하게 쳐다보다가 얼굴에 긁힌 상처들과 투박한 손을 보고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사건이 발생한 날 응급실에 환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사람, 감염자였던 거죠. 우린 그것도 모르고 마취제를 놓고 잠잠해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남자가 일어나 진료하던 의사의 목을 물어뜯었죠. 그 뒤로 감염이 정말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감염력이 얼마나 강한지, 물리자마자 10분도 되지 않아 미친 듯이 날뛰더군요.”
의사는 같이 지내던 동료들이 광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상기한 듯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 광인들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녔죠. 가족들한테 갈 겨를도 없었죠. 겨우 숨었다 싶었더니 물린 걸 숨겼다가 발작한 사람 때문에 다시 도망치고. 정말 정신없는 나날이었죠. 그 와중에 다친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일주일째 같은 속옷만 입고 있으니 몸에서 쉰내가 나는군요. 허허.”
프링글은 의사의 말에 씁쓸한 듯 웃었다.
“남부에서 지원 오셨다고 들었는데, 시에서는 어떤 해결책이 있는 겁니까?”
“글쎄올시다. 우리도 엊그제 도착했소만, 뭔가 획기적인 대안은 아직 없는 것 같더군요.”
“결국 시장이 원하는 대로 되겠군요.”
“?”
프링글은 의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빅터 시장이 취임한 뒤로 무르만스크는 골든타워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도시들이 점점 죽어가고 있었죠. 그는 골든타워 개발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빅터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골든타워로 찾아가 시위를 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빅터 또한 지역 주민들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겠죠. 자기가 하려는 일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방해하는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든 없애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예전에 각 도시에 있는 병원장을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러더군요. 의사들 같은 고급 인재들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조만간 자신이 도시 전역에 있는 병원들을 골든타워에 모아 하나의 거대한 의료지구를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의료비를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높이겠다는 거죠. 의사들은 좋아했지만 그건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죠. 돈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안 해주겠다는 것이니까요.”
프링글은 의사의 말에서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던 빅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 속의 빅터는 항상 카메라를 의식한 듯 과한 제스처를 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며 사람들이 피해 다녔던 것도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
주변이 깜깜해진 밤이 돼서야 비가 그쳤다. 막사에서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빛이 새어 나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위병이 녹초가 되어 돌아온 에이프릴 일행을 발견하고는 무전을 날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첫날부터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막사 안으로 들어온 에이프릴을 향해 파머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이미 기지 안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오늘 소각한 광인만 무려 65명! 남부에서 지원 온 소대 중에서는 아마 우리 소대가 선두일 겁니다! 정말 큰일 하셨어요!”
파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갔지만 셋은 피곤했는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닉은 어딨어요?”
“기갑부대들은 기지 중앙 별도 막사에 있습니다.”
에이프릴은 파머를 시켜 닉에게 잠시 보자고 말하곤 막사를 나왔다. 초가을 밤엔 일교차가 심해 쌀쌀했다. 주변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코 밑에서는 풀 냄새가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에이프릴은 철제 드럼통 옆에 다가가 담배를 꺼냈다. 빨간 불꽃이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듯 타올랐다.
“에이프릴.”
닉이었다.
“오늘 일은 전해 들었습니다. 고생하셨겠군요.”
닉이 에이프릴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해 보시죠.”
“오늘 죽였던 광인들 중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있더군요. 처음 투입된 지역자치군 같아 보였는데…”
에이프릴은 뿌연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 「광인」은 감염되거나 전염되지 않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제거하려는 것은 「광인」이 아니라 「감염체」인 거죠.”
닉은 에이프릴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본부에서도 알고 있어요?”
“기본적인 증상이 광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겁니다만, 감염과 같은 전이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전달됐을 겁니다.”
에이프릴은 말없이 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우리 역할은 어디까지인 거죠?”
“앞서 설명드린 그대로입니다. 감염체들을 제거하고 마을을 복구하는 것. 그게 우리의 임무죠.”
“그건 누가 정한 거죠?”
“네?”
“그 임무 말이에요.”
닉은 뜬금없는 질문에 고민하는 듯했다.
“글쎄요. 위에서 지시를 내렸으니 국방부 장관 정도 되지 않을까요?”
닉은 에이프릴의 질문에 답이 되었을지 그녀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계속 주시했다. 그녀는 뭔가 검은 그림자에 의해 짜여진 판 속에서 놀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문제라도?”
에이프릴은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드럼통에 던져 넣고는 웃으며 자리에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