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26. 소집
제 3 화 『 집단감염 』
26. 소집
오브라이언이 할츠버그에 있는 여행자의 거리를 지날때, 길가에 그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높이가 2미터가 조금 넘는 신문가판대였다. 시내 대부분의 상점들이 무인자동화 되어 점원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에, 그것보다 훨씬 이전에 소멸되었다고 생각했던 신문가판대가 이토록 눈에 띄게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오브라이언은 마냥 신기했다. 가판대 상단 지붕에는 ‘since 1950’ 이라는 아련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시에서 만든 관광상품일까 하는 생각에 안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갑자기 조그만 창문이 드르륵 열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하는거요?”
안에서는 약간 떨림이 있는 늙은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브라이언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자신에게 건넨 질문이 어떤 물건을 찾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상한 사람 취급하는 여주인의 말에 더 당황했다. 그는 한참을 머쓱하게 있다 담배 한 갑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가판대에 놓여 있는 종이신문을 봤는데 그것은 옛날의 것이 아니었다.
『제 5 분화구 근방, 폭발지수 3.0 이상 화산폭발 발생. 대재앙 다시 시작되는가』
『늙어가는 지구,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보이저 10호, 이주 정책 사실상 무한 연기』
종이신문에 실린 최신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유물에서 미래 시대를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뉴스는 세텔라이트가 비추는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봤기 때문에 독서를 취미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이신문은 꽤나 어색한 존재였다. 신문의 1면은 언제나 그렇듯 자극적이며 회의적인 내용들 뿐이었다.
“여어. 오브라이언.”
멀리서 가래가 끼는 듯한 목소리로 오브라이언을 부르며 다가오는 남자는 몇 달 전 남부지부 휴스턴에서 남부지부 카르고폴로 소속을 변경한 ‘랜스’ 였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덮수룩한 수염을 기른 그는 검은색 가죽 반장갑을 낀 손으로 오브라이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만큼이나 호쾌한 성격의 소유자로, 프라모에 있는 헌터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그는 언제나 '오래된 술집'에서 동료들과 수다떨기를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이 랜스인 것을 알았지만서도 정작 그의 직업이 헌터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랜만인데? 벌써 프라모가 그리워진 건가?”
“그럼. 아직 여기만큼 덜 떨어진 녀석들이 있는 곳을 본 적이 없거든. 아가씨는 잘 모시고?”
“뭐, 그렇지.”
“대단한 여유로움이구만. 그런 귀한 처자를 가까이 두고 아직까지 대머리나 긁고 있으니 말이야”
“하. 헛소리 하는 걸 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구만. 여긴 왜 온거야?”
“소식 못 들었나? 헌터 소집 공고 말이야.”
“소집?”
“집결지가 휴스턴 본부 던데?”
“그래? 처음 듣는군.”
오브라이언이 세텔라이트에 명령어를 대자 메일 수신함에 새로온 메일이 깜빡이고 있었다.
“무르만스크에서 광인이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하더군”
“무르만스크? 처음 들어 보는 곳인데.”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지. 안 가봤나?”
“글쎄. 도박과 친하지 않아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헌터들을 모집할 모양이던데. 시골 촌구석까지 공고가 내려왔더군.”
“그래? 어디보자… ”
오브라이언은 검은색 선그라스를 치켜 올려 세텔라이트가 펴 놓은 메일을 읽었다. 모집 인원이 000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렇게 많은 인원을 투입한다고?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지금껏 헌터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을 모집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도대체 무르만스크에 얼마나 큰 사고가 났길래. 오브라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랜스는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이 탄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다. 오브라이언이 공고문을 보며 한창 생각에 잠겨있자, 가판대에서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여주인이 이미 꺼내놓은 담배 한 갑을 가리키며 오브라이언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겸연쩍은 듯 머리를 몇번 긁고는 담뱃값을 지불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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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너비의 남부청 본부 집결지에는 프라모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 온 헌터들로 북적댔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걸 보면 상금도 기대해볼만 하겠는걸?”
슈프리머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이미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이런 큰 전투에서는 헌터 점수에 따라 순위가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에, 누가 더 실력있는 헌터인지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집결지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긴 칼을 허리에 찬 사람, 커다란 대포를 등에 메고 있는 사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소속된 팀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 유니폼들이 있었다), 그 중에 유독 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15세 정도 되보이는 어린 남자 아이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자기 키보다 큰 장봉을 등에 고정시킨 남자아이였고, 옆에는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소년이 한 손에 성경책을 쥐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둘을 보며 꼬마라고 겁을 주고 놀려댔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자리에 서 있었다.
“에이프릴!!”
황갈색 웨이브진 머리에 왼쪽 다리가 파인 빨간색 실크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에이프릴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에이프릴은 그녀를 알아봤지만 반가워하지도,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다. 슈프리머와 오브라이언은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메이’라고 소개하며 에이프릴의 언니라고 말했다.
“에이프릴, 넌 여전히 겨울 장미 같이 차가운 얼굴이구나. 아버지께서는 네가 집을 나간 뒤로 매일같이 너를 걱정하고 계셔. 이런 칙칙한 곳에서 미래도 없이 언제까지 방황하고 다닐 거니? 웁스. 죄송해요. 그만 말실수를 말해버렸네. 호호”
메이의 말에 두 남자는 기분이 퍽 상해버렸는지 먼 곳을 쳐다보았다.
“이런 미래도 없는 곳에는 어쩐 일이지?”
“호호. 내 말에 또 화가 나 버린 모양이구나. 몇 달 전 네가 광인과 싸우다 심하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서 들으셨어. 그날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몰라. 네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좋으련만, 넌 그러지 않을 테니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보내셨지. 저기 있는 사람들은 다 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경호원들이야.”
메이가 가리킨 곳에는 어림잡아 20명이 넘는,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들이 검은 정장과 검은 선그라스를 끼고 헌터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브라이언과 슈프리머는 저렇게 많은 장정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에이프릴을 보호하기 위해) 모였다는 말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감출 수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가자.”
에이프릴이 메이로부터 등을 돌려 자리를 피했다. 오브라이언과 슈프리머는 에이프릴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해 메이에게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고는 에이프릴을 뒤따라갔다. 메이는 군중 속에 사라져 가는 에이프릴의 뒷모습을 보며 알 듯 말듯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꽤 재밌는 판이 되겠군. 안 그런가. 지미?”
갈색 항공 점퍼를 입은 시드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옆에 있는 젊은 헌터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시드와 같은, 베테랑에게서 흘러나오는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무심한 듯 헌터들을 쳐다보았다.
“주문하신 햄버거가 도착했습니다. 자아, 하나씩 드세요”
중국계 동료 ‘풍’이 방금 막 사온 햄버거를 동료들에게 던졌다. 종이포장된 햄버거에는 미약하나마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개별 작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한데 모아놓고 보니까 또 새롭네요. 하하”
풍은 마지막 남은 햄버거를 손에 쥐고 지미의 옆에 앉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보자... 어? 제프! 저 사람들은 아마란스 거리에서 봤던 사람들이네요. 그때 그 개망나니 같은 놈도 아직 있네요. 저 빨간색 머리. 이번엔 제대로 혼 좀 내줘야겠어요”
뒤에서 조용히 햄버거를 먹던 갈색 피부, 검은색 콧수염의 제프는, 풍의 말에 멀리서 자기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빨간 머리 남자를 노려봤다. 그는 몇 달 전 제프와 같은 광인을 쫒고 있었는데 제프가 힘든 격투 끝에 붙잡은 광인의 머리를 총으로 쏴 쓰러뜨리고는 자신들이 잡은 것으로 플라시보에 기록했다. (광인이 제압된 상태에서는 추가 타격을 하지 않는 것이 그들 세계의 룰이었다) 제프는 빨간 머리에게 항의했지만, 오히려 그는, 살려준 것을 고맙게 여기라며 뻔뻔하게 말하고는 동료들과 사라져 버렸다.
“특전사 모하비도 왔네요. 저 분은 언제 봐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요. 저 탄탄한 근육\~ 몸이 갑옷이네요 갑옷\~ 또… 보자… 아\~ 쌍검사 고신도 왔군요! 와\~ 날 시퍼렇게 선 저 칼 좀 봐... 역시 칼은 뭐니뭐니해도 일본도가 최고죠? 하하하하. 응? 저건 또 뭐야? 검은십자가 부대네요? 오... 저 사람들은 여기 왜 있는 걸까요...?”
풍이 가르키는 방향에는 검은색 방호복을 입은 장정들이 심드렁하게 서 있었다. 등 뒤편에는 검은색 켈트십자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기갑부대는 국방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광인을 잡는 일과는 무관했다. 만약 그들이 지부의 정식 명령을 받고 왔다면 분명 이번 사건은 단순한 광인 몰이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이봐. 비켜.”
한창 이야기 중인 사람을 밀쳐내며 자리를 차지한 무리는 허만 일당이었다. 그들은 황소같은 체격에, 다들 키가 훤칠하게 컸고, 인상이 험해 헌터들 사이에서도 무례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무리의 리더인 허만은,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피렌체의 조각가, 반디넬리가 만든 헤라클레스 조각상처럼 크고 우람해 보였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헌터랍시고 떠들고 다니니, 이거 원 쪽 팔려서 살 수가 있나.”
허만의 굵은 목소리는 마치 골리앗을 연상케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기세에 금방 주눅들어 버렸고, 허만 일당은 꼬리를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웃어댔다. 기분이 나빴지만 덩치 큰 장정 8명을 상대할 만큼 베짱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들 그저 눈치만 살피더니, 허만 무리를 피해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그때 갈라지는 인파 사이로 붉은 색 화려한 투우사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미친 소 울음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정말 개나소나 헌터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군요.”
“뭐야!”
허만은 감히 자신의 말을 받아친다는 것이 화가 나, 코를 벌렁거리며 씩씩거렸다.
“후후. 흥분하는 꼴을 보니 영락없이 미친 소가 맞군요.”
“이 자식. 그 입 두 번 다시 나불대지 못하게 해주마.”
허만이 등 뒤에 찬 무거운 쇠방망이를 꺼내 들고는 무서운 기세로 투우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쇠방망이를 높게 치켜들더니 그대로 투우사를 향해 내리꽂았다. 폭탄이 지하에서 터지듯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했고, 사람들은 놀란 듯 탄성을 자아냈다. 허만이 쇠방망이를 내리꽂은 자리에는 땅이 부숴져 금이 가 있었지만, 투우사는 보이지 않았다. 허만은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투우사를 찾다, 그의 뒤에서 얄밉게 미소지으며 붉은 천을 흔드는 그를 발견했다.
“그렇게 둔해서야 이 카포테(capote)를 스치기라도 하겠어요?”

허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 다시 쇠방망이를 높게 들고는 소리를 지르며 투우사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허만과 투우사 사이에 빠르게 세 번의 총성이 울렸고, 허만은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집결지에 있던 헌터들은 총소리에 민감했기 때문에 재빨리 총이 발사된 곳을 향해 무섭게 쳐다보았다. 그곳엔 15연발 피스톨을 한 손에 쥐고 인상을 쓰고 있는 늙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카스트 지부의 보안감찰국 남부청장을 맡고 있는 제퍼슨 청장이었다.
“곧 죽을 놈들이 먼저 뒤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구만.”
그는 총을 거둬 옆에 있는 비서관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모두가 조용해진 사이 중앙무대에 있는 마이크를 향해 걸어갔다. 일순간 사라진 소음에 그의 구두 소리가 또각 또각 선명하게 들렸다.
“반갑다. 남부청장 제퍼슨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본부에서 보낸 메일을 다 보고 왔을 테지. 이미 알고 있을테지만, 북부관할 무르만스크에서 대량 광인 사태가 발생했다. 어제까지 북부청에서 추산한 사망자만 25만명이다. 걔중에는 북부청에 등록된 헌터 2,000명도 포함되있지. 비서관. 영상 띄워보게.”
국장 옆에 있던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가 아래 방송실을 향해 손짓을 하자, 거대한 실내를 밝혔던 조명들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람들 머리 위로 네모난 홀로그램 화면이 군데 군데 나타났다. 무대 중앙에서도 대형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는데 모두 같은 화면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화면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그저 블랙 스크린이었다. 그러다 어떤 영상물이 켜진 듯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화면은 사람이 직접 찍은 듯 떨림이 있었고, 멀리서 희미하게 화재현장을 연상케하는 주황색깔 불빛들이 부분 부분 보였다. 어떤 도심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멀리서 총성이 들리다가 멈췄다. 화면이 다른 곳을 비추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불쾌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면은 조금씩 앞으로 향하는 듯 했다. 불빛이 화재라는 것이 인지될 정도의 거리에 이르자, 카메라 맨의 숨소리가 거칠게 빨라졌다. 화면은 어떤 한 구조물 뒷편에 숨어 화재가 난 시내를 보여줬는데, 건물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듯 했다.
화면이 좀 더 가까이 사람을 클로즈 업 하자, 거리를 배회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광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메라 맨의 숨소리는 점점 더 빨라졌다. 길거리에는 이미 큰 전투가 있었던 듯, 곳곳에 엎어진 시체와 피가 보였고, 길 중앙에는 부서진 탱크와 그 위에서 덮개를 떼내고 있는 광인이 보였다. 이곳 저곳에서 광인이 사람을 찾는 듯 천천히 움직이며 괴성을 질러댔다.
화면은 전환되었고 이번에는 건물 안에서 창문을 통해 길거리를 비추는 듯 했다. 길가에는 군데군데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색칠된 날카로운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붉은 피가 퍼진 채 그 위에 엎어진 시체들이 보였다. 시체들 옆에는 검은색 소총이 놓여 있었는데 제퍼슨이 말한 북부청의 헌터인 듯 했다. 여전히 광인들은 느린 동작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특유의 어기적 거리는 동작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정신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화면이 다시 전환되며 이번에는 전투현장인 듯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총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욕 하는 소리도 들렸다. 화면은 약간 높은 위치의 벙커에 있는 듯 했고, 군인들이 기관총과 소총으로 달려오는 광인들에게 총알을 퍼붓고 있었다. 총알은 발사되는 족족 광인들의 머리나 가슴에 꽂혔고, 광인들은 피를 튀기며 몸이 터져나갔다. 계속되는 사격에도 광인들은 괴성을 지르며 벙커를 향해 기어올라왔다.
잠시 뒤 먼 시야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건물 외벽이 박살나더니, 엄청난 무리의 광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그것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댔고, 대량의 광인 무리들은 벙커를 향해 우루루 몰려 오기 시작했다. 화면은 흔들렸고 벙커를 넘어온 광인 무리들은 군인들의 사지를 찢었다. 사방에서 군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화면은 아래로 툭 떨어지더니 곧 꺼져버렸다.
다시 실내 조명이 밝아지자, 제퍼슨이 마이크를 잡았다.
“보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다. 이미 지역방위대가 전멸했고, 600㎢ 면적의 도시가 폐허가 됐다.”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고 웃던 헌터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광인들에게 군인들이 찢겨나가는 장면은, 처음은 아니지만 불쾌감을 주었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공포스런 광인과의 전투가 상기되었다.
“3일전 동부청에서 헌터 약 1,500명 정도가 지원투입 됐는데... 흠... 대부분 1달도 못 버티고 자진 복귀했다고 하지."
남부청장의 무미건조한 말에 헌터들은 할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린 여러분들이 무고한 희생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옆동네의 일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스럽게도 국방부에서 기갑부대를 투입해 우리 헌터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자 모두 여기를 주목하도록. 이 분들이 앞으로 무르만스크에서 여러분들과 같이 움직이게 될 기갑부대이다."
제퍼슨이 가리킨 곳엔 캘트 십자가 마크를 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머쓱한 듯 헌터들을 쳐다보았다.
"귀하게 모신 분들이니 다들 각별히 기갑부대원들의 말을 잘 따라 주시길 바란다."
제퍼슨이 기갑부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인사를 하자, 기갑부대원들도 헌터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전투는 강제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지원하지 않아도 헌터생활에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겠다. 반대로 지원해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큰 댓가가 따르겠지. 위험한 전투이니 다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원하길 바란다. 아 그리고, 나도 이렇게 많은 헌터들을 모아보긴 이번이 처음이지만, 「제발 너희들끼리 싸우지 좀 마.」 이거 원 어린애들도 아니고. 흠흠. 아무쪼록 건투를 빈다. 이상.”
제퍼슨이 무대를 내려가자 옆에 있던 비서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었다.
“작전 참가 신청은 금일 24시까지 받겠습니다. 신청된 인원의 실제 투입여부는 등록된 이메일을 통해 개별 통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부에서는 여러분의 능력을 최대한 지원하고자 합니다. 자기 팀이 있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팀 단위 지원을 작성하셔서 작전 시 서로 떨어지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최종 인원이 확정된 뒤에는 본부에 기록된 임무 수행 실적에 따라 소대가 편성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