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 공지 📖 연재소설 💬 자유게시판 🖼️ 갤러리 📁 자료실 🛒 중고거래 ✏️ 창작 노트

[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21. 귀가

조회 407회
1
추천

21. 귀가



[앨버트의 회상 시작]



파란 하늘이 무한히 펼쳐진 공간 속에 흰 구름이 조각 조각 떠 다녔다. 구름은 바람이 일 때마다 잎사귀가 되었다가 유리잔이 되었다가 하며 모습을 바꾸었다. 언덕 위의 사내는 말이 없었다. 그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또 한번 불자 언덕 위에 갈대들이 석양 빛을 받아 깃발처럼 나풀거렸다. 멀리서 큰 무리를 이끌고 흰 거품을 머금고 다가오는 파도는 마치 남자를 애타게 찾는 듯 커다랗게 부서지며 큰 파도소리를 냈다. 남자는 파도의 부름에 멍하니 쳐다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계속 멀어져 가는 파도를 바라만 보았다.





그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사고가 있은 날로부터 3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그는 그곳이 어디인지 묻고 싶었으나 시야가 흐릿하고 잠이 또 다시 올 듯 말 듯 굉장히 졸립고 피곤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그를 찾아왔고 그제서야 그는 그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징어 공장 폐기물 처리장 가스 중독사고, 사상자 3명』







그가 새 병실로 이동했을 무렵 TV에서는 3일전 안전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뉴스로 보도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온 곳이 어찌나 낯이 익던지 보이지 않은 곳까지도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뉴스에서는 아나운서가 담담한 얼굴로 경찰이 사업주를 대상으로 정확한 경위를 파악한 뒤 영장을 발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꾸만 잠이 왔다. 그런데 막상 눈을 감으면 잠이 오지 않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다시 눈을 떴다. TV화면에서는 방금전 뉴스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시어머니가 자꾸 신혼집을 방문해서 불편하다는 한 가정주부의 사연에 패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희끗한 의사가 그의 병실을 방문해 그에게 아픈 곳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머리가 멍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황화수소에 노출되어 뇌세포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일을 하지 말고 쉬면서 신경외과에서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라고 말했다. 의사가 병실을 나가고 그와 같이 왔던 간호사가 퇴원 수속을 설명했다. 1주 정도의 병원비가 나왔는데 금액이 상당했고 그가 당장 낼 수 있는 여력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간호사는 걱정하지 말라며 ID카드로 『신용』처리 하겠다고 말했다. (ID카드의 신용처리는 일부 업종, 예를 들어 병원, 경찰서, 소방서 등에 한하여 허용되었고 채권관리는 신용사무국에서 별도로 자산이나 소득에서 추심하였다) 앨버트는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고 간호사는 이미 오래 전에 화장업체를 통해 사체처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혹시 아는 사람들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3평짜리 반지하인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익숙한 사물들에서 어색함을 느꼈다. 어린 동생은 그간 라면으로 밥을 떼웠는지 쓰레기통 안에 라면 봉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는 방안에 들어오자 마자 가방을 놓고 그대로 바닥에 드리누웠다. 그늘진 천장 가운데로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주황색 석양 빛이 지나갔다. 간간히 밖에서는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소리도 들렸다.





불현듯 어린 시절 손가락을 다쳐 하루종일 방에서 누워있던 엄마가 떠올랐다. 그녀는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삶을 다 산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오히려 평소 괴로워하던 표정보다는 두 형제에게 나은 듯 했다. 그녀는 간간히 자신의 짧아진 손가락을 더듬었다. 뭔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이 사라져 서러운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천장을 쳐다보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들어왔다.





그가 시선을 돌려 방안을 훑어보자 네모난 종이 박스 위에 놓여있는 금빛 트럼펫이 보였다. 그는 몸을 일으켜 트럼펫을 집었다. 입가에 갔다 대고 훅 하고 불자 바람소리가 지나갔다. 그가 다시 두어 번 깊게 바람을 불자 금관 사이로 투박한 바람소리가 지나갔고 그는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기침을 멈추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기침은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 나와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했다. 그는 바닥에 털썩 쓰러져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렀다. 계속해서 토해내던 기침은 어느덧 야수와 같은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 없을, 가슴 속 심연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울부짖음으로 울어댔다.





[앨버트의 회상 종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