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17. 휴식
17. 휴식
[앨버트의 회상 시작]
-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노고 덕분에 작업이 무사히 완료될 수 있었습니다. 금월 지급예정이었던 급여는 본사 사정으로 익월 지급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후속 작업은 다음 달 초에 진행되며 연장인원에 대해서는 개별통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아르피엔씨 -
“야! 작업 끝났냐?”
녹슨 철재 문이 열리자 주황색 석양 빛이 자재를 정리하고 있는 앨버트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그 눈부신 빛 사이로 햇빛을 등진 그림자 속의 얼굴은 신이 난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앨버트 역시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오후, 끝도없이 길게 늘어진 작업자들의 퇴근 행렬 속에서 석양 빛에 쓰고 있는 안전모가 빛났다. 앨버트는 이곳을 떠난다는 해방감과 함께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저들은 내일도 계속해서 일을 하러 이곳을 올 것이고 또 이렇게 석양 빛을 맞으며 퇴근할 것이다. 묘한 감정이 섞였지만 그래도 내일부터는 아침 늦게까지 실컷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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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999cc 빨간색 소형차가 해안 도로를 따라 무한 질주 했다.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큰 차들을 요리 조리 제치고, 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렸다. 차 안에서는 일렉트로닉 풍의 클럽 음악이 심장을 두드렸다. 빠른 속도를 타고 창문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들은 해방감을 느꼈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로 반짝거리며 빛나는 햇빛을 보자 마음이 요동쳤다. 그 순간 만큼은 앞날에 대한 불안, 걱정 따위는 집어 던졌다. 오직 바다로 가서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아가씨를 만나겠다는 생각만으로 그들은 행복에 들떠있었다. 바야흐로 청춘의 계절, 여름인 것이다.
부푼 희망을 가슴에 앉고 달려간 해변에는 한 시야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자갈이었다.
자갈.
“백사장이 아니라 자갈이었네… 하아… “
두꺼운 입술은 자갈을 손에 쥔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이 상상했던 하얀 모래알과 파라솔, 비키니를 입고 오일을 바르고 누워있는 아가씨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자갈마당이었다. 단지, 여인이라고는 멀리서 검은 옷을 입고 하얀 스폰지통을 허리에 댄 체 걸어오고 있는 늙은 잠수부들이 전부였다.
“야! 핫 플레이스 라며?”
두꺼운 입술이 앨버트를 향해 소리쳤다.
“분명히 그렇게 써 있었어. 여기.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 버금가는 프라모의 명소로서 문어, 가재 등 각종 해산물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는 핫 플레이스 이다.”
“야이 병신아. 그 핫플이 그 핫플이냐. 아오!”
머리를 박박 긁어대는 두꺼운 입술, 계속 블로거를 둘러보는 앨버트와 그의 뒷통수를 내리치는 폭탄머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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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곳에는 ‘벨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해서든 휴가를 재밌게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중앙수산시장에서는 각종 어족들이 네모난 유리어항에 양식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닮은 어족을 선물해 주기로 했고 각각 우럭과 장어, 해삼을 골랐다. 광장에는 마을의 상징물인 새부리 모양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 특산물인 조갯살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했다. 오래된 시장의 길 사이사이로 잡화나 핫도그 같은 길거리 상인들이 즐비해 있었고 ‘추억스탬프’라고 하는 돌아오지 않은 우체통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사진을 찍거나 우편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은 젊은 청년들이 가득한 만남의 장소를 찾아 돌아다녔고 두어시간을 돌고나서야 그곳이 단지 외진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더이상 여자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 낮에 산 생선으로 회를 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땐 진짜 여자들이 날 엄청 좋아했다니깐.”
술이 취하자 어김없이 두꺼운입술이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가 어떤 음악 클럽에 디제이로 일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음악 편곡하는 재주가 있어 그가 편곡한 음악을 무료로 음악 클럽에서 틀곤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나중에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오는 저녁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의 황금 타임에 디제이로 활약 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돈 많이 벌었지. 일 끝나면 나보고 같이 한잔 하자는 여자들이 줄을 서었다니까!"
그러다 한 여자에게 반해 한달 가량 졸졸 따라다니며 구애한 끝에 겨우 사귀는데 성공했는데,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여자가 DJ라는 직업을 반대해 결국 그만뒀다고 했다.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잘 나가던 디제이 자리도 포기했는데, 막판에 여자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버리는 바람에 인생이 공중으로 붕 떠버렸다고 말했다.
“아. 그때 계속 그 길로 갔었어야 했는데. 젠장.”
그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며 독한 위스키 한 잔를 통째로 목구멍에 털어 넘겼다. 폭탄머리는 자기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두꺼운 입술도 그와는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사이라고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도주 하는 중에 만난 사이었다.) 그는 아무 연고도, 모아둔 돈도 없었고 그 날 번 돈을 담배와 술값으로 쓰는 하루살이 같은 남자였다. 물론 일자리가 없는 요즘같은 세상에야 흔한 청년의 삶이었다.
“너네 픽스(옷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던 미카엘 기억하냐? 얼마전에 걔 휴대폰으로 문자오길래 봤는데 부고장이 왔더라고. 근데 그게 누구 부고장인지 알아? 미카엘 자기 부고장이더라고. 와. 문자 받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소름이 쫙. 어후.”
“왜 죽었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아르바이트도 짤리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했다더라. 아 진짜 그래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얼굴보던 사이었는데. 하 참. 진짜. 허무하네. 씨발. 나는 절대 자살 같은 거 안할꺼야. 존나 나이스 바디한 여자랑 결혼해서 자식새끼 낳고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꺼야. 씨발.”
“넌 병신이라 저승 가도 안 받아줘.”
“그런가? 크크큭”
그들은 씁쓸하게 술잔을 마주치며 들이켰다. 청년들 특히 남성은 35세를 전후로 심각한 정신적 변화를 겪었는데, 사람들은 그 시점을 두고 <마의 35세>라고 불렀다. 그 시기에 이르면 남자들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까지 직장이나 결혼을 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 하게 될 경우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려 자살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숫자가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많아지자 오히려 사람들은 숫자에 무감각해져 갔다.
“넌 뭐할거냐?”
두꺼운 입술이 앨버트에게 물었다.
“난… 글쎄… “
“얜 원래 아무 생각이 없어.”
“너도 아무생각 없잖아. 이 븅신아.”
“맞네, 씨발.”
그들은 건배를 했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고 바뀌지도 않을 세상을 위해.
[앨버트의 회상 종료]
